종합
조선일보
2026-07-13T15:40:00
[일사일언] ‘마음의 칼’은 무딜수록 강해진다
원문 보기아파트 단지 안에도 장이 선다. 재래시장 느낌을 몇 스푼 얹은 도시형 장터다. 좀 더 큰 단지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를 들이거나 입주민을 위한 무료 서비스를 지원하기도 하는데, 특히 반응이 좋은 것이 바로 ‘칼갈이’다. 어렸을 때 동네를 돌아다니며 ‘칼 갈아요’를 외치는 아저씨가 있었다. 신문지 절삭이라는 방법으로 칼갈이의 효과를 전후로 비교하는 나름의 검증 절차도 갖췄다. 소형 트럭이 다닐 골목도, 잠시 차를 세울 공간도 없는 도시에서 사라졌던 ‘칼갈이’가 아파트 장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집에서 아무리 갈아도 좀처럼 날이 서지 않아 무딘 칼과 가위를 묵혀 두고 있던 주민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서비스다.조급한 주민들은 아저씨가 업무를 개시하기 전부터 칼갈이 트럭 앞에 칼이 든 봉투로 하나둘 자리를 맡아 놓고 사라졌다. 김치 통에, 쇼핑백에, 신문지에 쌓인 칼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얼마 후, 줄지어 놓인 칼과 가방을 대기 줄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새롭게 줄을 서기 시작했고, 칼로 자리를 맡아둔 사람들과 분쟁이 생겼다. 번호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칼에 이름을 새겨놓은 것도 아니니, 줄을 선 사람이 먼저냐 줄을 맡아놓은 칼이 먼저냐를 두고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