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7-30T15:39:00

[일사일언]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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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올라가 건반에 손을 얹는 순간, 불길한 확신 하나가 엄습한다. 오늘 그 악절(樂節)에서 반드시 실수를 저지르리라. 연습실에선 수백 번 매끄럽게 흘러가던 악절이 무대에만 오르면 삐걱거리며 낭떠러지로 치닫는다. 악보를 놓치진 않을까, 손가락이 엉키면 어떡하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수를 기다리느라 정작 흐르고 있는 음악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틀린 음을 고칠 수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할 수도 없다. 그러니 몸이 먼저 반응한다. 팔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빠져 속이 울렁거린다. 사람들은 적당한 긴장이 연주에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오히려 자의식이 고개를 든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도리어 나를 막아서는 셈이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떠올리는 순간, 음악의 흐름에서 미끄러진다. 한때 분명히 가지고 있던 것을 통째로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