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뉴시스 2026-08-29T23:00:00

[르포]흙더미에 묻혀버린 꿈…"한국서 8년 번 돈 다 날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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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와코트(네팔)=뉴시스]박정규 특파원 = 한국에 가서 공장에서 일하다 왔어요. 8년 동안 일을 했는데 한국에서 벌었던 돈이 다 날아가 버렸어요. 자녀 3명을 포함해 가족 6명이 함께 생활했던 집이자 일터를 한순간에 잃게 된 주민 노보라지 우쁘레띠(38)씨는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이같이 말했다.그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있으면서 공장에서 일하면서 끌어모은 전 재산으로 강가에 식당 겸 숙박업소를 차렸는데 이번 네팔 대홍수로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지난 29일 오전(현지 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구불구불한 산등성이와 비포장도로를 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누와코트 지역 비두르시(市)의 한 마을.이번 네팔 홍수로 범람한 트리슐리강가에 인접한 이 마을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한 아수라장이었다.이곳은 이번 네팔과 중국 티베트가 맞닿아있는 산사태 발생지역부터 네팔의 대홍수가 이어진 트리슐리강의 아래쪽 지역으로 9명의 한국인 실종자가 발생한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 건설현장보다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비교적 강 아래쪽에 위치한 터라 상류에서 알린 홍수 소식을 듣고 급하게 대피한 탓에 인명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마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흙더미에 파묻힌 상태였다.흙탕물로 바뀐 강물은 여전히 거세게 흐르는 가운데 그 위로 이어진 마을 건물들은 진흙에 파묻혀 아예 형체가 없는 경우가 상당수였고 관공서나 은행 등 일부 높은 건물들은 반쯤 파묻힌 채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저 아래쪽 강가부터 시선 위쪽의 가파른 언덕까지 십여 미터 높이는 되어보이는 곳까지 한때 토사가 쌓였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발밑은 여전히 상당한 흙더미로 덮인 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곳들이 이어졌다.한때 시장 거리가 있었다는 길은 이미 흔적도 없이 파묻혀버렸고 파손된 도로에 45도로 걸쳐 버려진 트럭도 눈에 들어왔다.푹푹 찌는 더위와 습기 속에 곳곳에서는 토사에 묻힌 축사 등 때문인지 가축의 사체가 썩는 듯한 악취도 풍겨났다.이곳부터 시작해 더 큰 피해를 입은 윗마을 방향으로는 더 이상 외부인들의 진입이 금지된 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취재진들도 이곳에서 네팔의 참상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다만 이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복구하려는 희망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마을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이웃들을 도와 수해를 입은 집들에서 그나마 남은 가재도구들을 꺼내는가 하면 불도저 등 현장에 동원된 중장비들은 분주하게 오가면서 물건과 사람들을 실어나르며 복구작업에 시동을 걸었다.천진난만한 마을 아이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외국인 기자들이 신기한 탓인지 연신 기웃거리며 취재 장비들을 살펴보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이처럼 수색과 복구작업이 막 시작되고 있는 피해지역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이곳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당분간 이어질 고통의 무게를 가져다 준 아픈 기억이다.자신의 일터가 날아가버린 우쁘레띠씨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다. 당시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는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에서 나온 장면처럼 한꺼번에 흙탕물이 흘려내려와 어떻게 도망치고 아이들을 위로 올려보냈는지 기억이 날 상황이 아니었어요. 불과 집이 흙더미에 잠길 당시 불과 2분 차이로 아이들을 살렸다는 그는 우리 가족은 가게만 피해를 입었지만 여기서 조금 더 위쪽에 있는 마을에 살고 있던 이모 가족은 전부 다 연락이 안 된다 며 슬퍼했다.또 지금 토사 제거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집까지는 시작할 차례도 안 됐다 며 제가 입고 있는 이 옷 한 벌밖에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우리 가족 전체가 다 같은 상황 이라고 하소연했다.농업은행 현지 지점 부지점장인 바랏 다깔(51)씨는 건물 아래쪽이 토사에 잠긴 은행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다깔씨는 은행의 모든 서류나 안쪽에 있던 금고 등이 여전히 다 건물에 있어서 지키고 있는 것 이라며 오늘부터 빼내기 시작하려고 장비를 갖고 왔는데 아직 비가 내려 언제부터 일이 시작될지는 모르겠다 고 말했다.이어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데 홍수 소식은 조금 미리 알게 돼 직원이나 가족들이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다 면서 한국인도 몇 명 실종됐다고는 아는데 여기가 정신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고 덧붙였다.마을에서 비교적 위쪽 언덕에 집이 있는 인디라 아디까리(40)씨는 당시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이상한 큰 소리가 들렸다 며 사람들이 다 왔다갔다 하면서 도망쳐 우리도 그것을 보고 위쪽 사원으로 대피했다 고 돌이켰다.아디까리씨는 이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홍수 사실을)좀 빨리 알게 돼 피해를 당한 사람이 적다 면서도 지금 이곳 전체적으로 이런 상황이라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jk76@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