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5-21T18:00:00
공산군 포로보다 못한 한국군 급식… 백선엽이 외신을 움직인 이유
원문 보기한반도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 6·25전쟁을 ‘내전(內戰)’이라 적는다면, 그 나름대로 다행인 점이 하나 있었다. 백선엽 장군은 “우선 먹는 것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고 자주 회고했다. 그러나 아주 기본적 수준이었다.전쟁이 벌어진 직후 백선엽은 1사단을 이끌고 임진각 일대 방어에 나섰다가 사흘 동안 치열했던 방어에도 불구하고 한강 인도교가 먼저 끊기는 바람에 이른바 ‘유랑(流浪)하는 사단’ 신세로 한 달 정도 줄곧 밀려 낙동강 전선으로 남하했다. 굶주림을 겨우 면하는 수준 식사만이 가능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민가에 널린 된장, 시골 농업 창고에 있는 쌀을 구해 겨우 배고픔을 면했다. 막대한 물자를 지닌 미군이 상륙했지만, 그들의 보급을 한국군이 탐내기는 불가능했다. 보급을 비롯한 기본 유지 물자에 관해서는 철저히 한국 스스로 부담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