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3-16T15:43:00
[일사일언] 탈권위적 호칭 ‘○○ 엄마’
원문 보기몇 해 전, 술자리에서 도서 번역가 한 분과 동석한 일이 있다. 무엇이 가장 까다로운 일이냐 여쭈니, 호칭을 번역하는 게 가장 곤란하다고 했다. 원서에서는 등장인물이 이름만 부르며 대화하는 건조한 장면인데, 한국어로 옮기려면 필연적으로 ‘관계’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남매라도, 여동생이 오빠를 대하는 화법과 누나가 남동생을 대하는 화법은 전혀 다르다. 구체적 관계가 명시되지 않은 소설이 참 난감하다고 했다. 한국어에서 호칭은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생각해 보면 우리의 친족 호칭은 가족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 부르고, 처음 본 선배를 ‘형’이나 ‘언니’라 부르는 건 한국어만의 독특한 친족 호칭 확장이다. 그런데 그렇게 호칭이 확정되는 순간, 의도치 않은 부가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호칭 정리가 된 두 사람 사이에 어김없이 서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같은 직위의 구성원이라도 형은 형이고, 언니는 언니다. 미묘한 수준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서열을 의식하니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