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4-15T15:42:00

[일사일언] 머릿속으로만 소설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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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글쓰기 교양 수업에서였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 ‘치버’는 아무에게도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오직 머릿속으로만 소설을 한 권씩 완성해 간다. 그는 이미 완성된 소설을 종이에 옮길 시간에 차라리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자 한다. 작중 치버의 심리가 직접적으로 제시되진 않지만, 그가 젊은 날에 쓴 소설이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혹평을 받았다는 과거 서술로 인해 그의 기행은 ‘회피성 방어 기제’로 읽힌다.나는 그 이야기를 종종 곱씹곤 했다. 소설을 쓰게 될 줄 몰랐던 때부터, 등단을 꿈꾸며 소설을 쓸 때에도, 심지어 등단 이후에도 치버는 종종 내게 말을 걸어왔다. 착상 단계는 재밌는데 말이야, 그걸 구체적인 형태로 옮기려면 귀찮고 힘들지 않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보단 미완의 걸작으로 남겨놓는 게 마음 편해. 나는 치버를 섣불리 조소하거나 연민할 수 없었다. 등단이라는 좁은 문 앞에서 소설을 쓰면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읽히지 않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야?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하면 소설가가 아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