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4-22T11:09:43

[만물상] 커피믹스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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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서울대가 개교했을 때 “삼면이 바다인 나라가 살 길은 배 만드는 기술뿐”이라며 의기투합한 청년들이 있었다. 가르칠 교수도, 공부할 원서 한 권도 귀하던 시절 그들은 서로가 선생이자 학생이 되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윤강(輪講)’으로 학문의 기틀을 닦았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1회 졸업생들이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조필제 전 동서식품 부회장이다. 동창회 명칭을 “우리가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을 꿈꾸자”며 진수회(進水會)라 지은 사람도 그다. 그가 10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졸업 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국내 최초의 철강선 ‘한양호’를 준공하며 꿈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당시 조선소는 수익성이 나빠 월급이 두세 달씩 밀리기 일쑤였고, 아내와 자녀들은 냉방에서 끼니 걱정까지 해야 했다. 보다 못한 장인이 “삼성에서 공장을 계획한다니 그 곳으로 옮겨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몇 달을 버텼지만 결국 장인의 꾸중까지 듣고서 조선소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