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8-31T15:37:00

[일사일언] 詩는 계절이 오듯 서서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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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천문학자 밥 버먼의 책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에서 매우 아름다운 문장을 읽었다. 책에는 온갖 것의 속도가 서술되어 있는데, 특히 ‘봄이 오는 속도’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버먼은 아열대 기후인 플로리다에서 꽃이 피기 시작해 매주 160㎞의 속도로 개화 전선(開花 前線)이 북상한다고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채로운 꽃망울이 시속 1㎞의 속도로 북상하며 터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 속도를 이미지에 빗댄다. 봄이 오는 속도가 유아차를 밀면서 걸어가는 속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한 편의 시를 만난 것처럼 이 문장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날, 유아차를 밀면서 걸어갈 사람. 그리고 그 유아차 속에서 만개한 꽃들을 올려다볼 아기를 상상해 봤다. 그 아기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신생(新生)하는 꽃과 막 태어난 아기가 서로를 마주하는 꿈같은 장면. 봄이 오는 속도로 걸어갈 두 사람과 그득한 꽃그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참 살 만하고 멋진 곳 같았다. 그 느린 걸음과 보폭이 눈에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