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8-25T15:39:00
“고려인 예술가 연기하며, 할머니 걸어온 길 생각했죠”
원문 보기평생 ‘박레프’로 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얼어붙을 것 같은 맨바닥을 맨발로 걷던 어린 자신의 모습이 첫 기억이었다. 여전히 한국에 와보지 못한 외할머니 박셰가이리디야(78)는 “정말 배고프고 추웠다. 갈대밭밖에 없는 곳에 내렸다”고 기억한다. 서울문화재단 광복 81주년 기념 연극 ‘극장은 달린다’(오세혁 작, 변영진 연출)의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베크), 카자흐스탄(카자흐) 순회 공연에 ‘아기 엄마’ 역할로 참여하는 우즈베크 고려인 4세 이사샤(32) 배우에겐 이 공연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길을 따라가는 일”이다. 러시아 연해주 신한촌에서 강제 이주 열차에 짐짝처럼 실린 한인 예술가들은 그 안에서도 공연을 계속했다. 1932년 창단 이후 94년간 역사를 이어온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인 예술 단체 카자흐 ‘고려극장’의 시작이다. 이사샤씨는 이 공연에서 열차 안 공연을 지켜보는 ‘아기 엄마’ 역할이다. 그는 “아기를 안고 연기할 때면 우리 할머니도 이 아기처럼 안긴 채 우즈베키스탄으로 왔겠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사샤씨는 극중에서 유창한 영어와 러시아어 대사는 물론, 우즈베크·타지크·카자흐·키르기스어에 한국어까지 다섯 나라 말로 춘향가 한 자락을 멋지게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