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8-29T23:59:43

감격의 10·19 평양 탈환... 이승만이 평양에 나타나자 광장은 태극기 바다가 됐다 [호준석의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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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통쾌한 북진이 계속되던 10월 5일. 충남도청에 차려진 미 1군단 사령부로 예하 사단장들이 소집됐습니다. 청주에서 싸우던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L5 포병 연락기를 타고 충남도청으로 향했습니다. 평양 진격의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꿈틀댔습니다. 평양은 그가 자라난 곳이기도 했습니다. 백선엽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미 1기병사단장(호버트 게이), 미 24사단장(존 처치), 영국 27여단장(바실 코드)이 작전계획서를 수령해 간 뒤였습니다. 백선엽은 200쪽 가까운 작전계획서를 서둘러 넘겨봤지만 1사단의 진격로는 해주와 안악 방면. 평양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1사단이 평양으로 가지 못하면 국군 전체의 사기가 곤두박칠 것이 뻔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평양에는 ‘우리 아이들’(마이 보이, 이 대통령은 국군을 그렇게 호칭)이 먼저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