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조선일보 2026-05-12T15:41:00

[일사일언] 초록의 경이로움 앞에서

원문 보기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함께 데려온 화분이 있다. ‘스파티필름’이란 종인 ‘녀석’은 식물 치고는 의사소통을 제법 잘했다. 물이 필요하면 축 늘어져서는 온몸으로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물을 주면 금세 이파리를 빳빳하게 세워서 자태를 뽐내곤 했다. 직사광선만 아니라면 어떤 환경이든 적응도 잘했다. 데려온 지 1년 즈음 되던 어느 날, 우연히 녀석을 데려오던 날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녀석은 낯설 만큼 키가 작았다. 매일매일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라서 어느새 이렇게나 커진 것이었다. 우리가 내어준 것보다 많은 것을 기꺼이 받아먹었음이 분명했다. 그런 녀석이 문득 기특했다.그리고 반년쯤 지났을 때, 우리는 결혼했다. 남편의 자취방에 있던 녀석도 무사히 이사해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달라진 환경 탓인지 이상하게 집에 있는 반려 식물들이 하나씩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분갈이가 필요한 것 같아 분갈이를 해주어도 끝내 나아지지 못한 친구들도 있고, 마지막 이파리만 겨우 남겨놓고 끈질기게 버티는 친구들도 있다. 알고 보니 어디선가 진드기가 붙어서 함께 두었던 화분들이 모두 병충해를 입은 것이었다. 녀석의 몸에도 역시 진드기가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만큼은 부지런히 우리와 소통하며 생명을 품어왔다.